유삼환 [824224] · MS 2018 · 쪽지

2021-08-07 22: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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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윤리] 생윤러들 주목! ‘노직과 중립적인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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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기 전에, 먼저 다음 두 진술에 대한 정오 판단을 해 보세요.


1. 노직 : ‘분배적 정의’는 중립적인 개념이다. ( )

2. 노직 : ‘개인의 소유물’은 중립적인 개념이다. ( )


일단 표층적 차원에서 답을 말씀드리면 1.은 X 2.는 O입니다.

이는 노직의 대표 저서인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에 등장하는 내용이기도 하고, 실제로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번 문항의 제시문으로도 출제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노직은 ‘분배적 정의’는 중립적인 개념이 아니지만, ‘개인의 소유물’은 중립적인 개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혹시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위 제시문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나요? 대부분의 학생들은 물론 심지어는 몇몇 강사들까지 이 위 제시문의 내용을 아래와 같이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는노직의 사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결여한 채 이 제시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설명이므로, 교정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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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직에 따르면) 개인의 소유물은 중립적 개념이다. 어떤 한 물건을 생각해 보자. 이 앞에 있는 이 노트북을 예로 들어 보겠다. 이것은 중립적 개념이다. 이것이 ‘옳은’ 소유물인지 ‘그른’ 소유물인지를 판단하려면 역사적 과정을 봐야 한다. 내가 이것을 정당하게 취득했는지, 정당하게 이전받았는지 확인해 봐야 알지, 당장 이 소유물은 중립적 개념이다. 분배적 정의는 중립적 개념일 수가 없다. 실현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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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야 저게?” 이 설명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설명, 분배적 정의가 중립적 개념일 수 없는 이유가 그것을 실현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조금의 정당화도 어려운 완벽히 틀린 설명입니다. ‘틀린’ 설명이므로 이해가 어려운 것이 당연합니다. 노직이 “‘분배적 정의’는 중립적인 개념이 아니지만 ‘개인의 소유물’은 중립적인 개념”이라고 말한 것은 전혀 다른 맥락에 있습니다. 노직의 말을 살펴봅시다. 제가 강조 표시를 해 드린 부분을 위주로 읽으시면 됩니다. 노직의 생각은 이런 것입니다.


‘분배적 정의’란 용어는 중립적인 것이 아니다. ‘분배’란 어휘를 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기구 또는 기관이 물건들을 나누는 데 어떤 기준 또는 원리에 의존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각자의 몫을 분배하는 이 과정에서 어떤 실수가 끼어들 수도 있다. 따라서 재분배 redistribution가 이루어져야 할지는, 적어도, 열려진 문제라 할 수 있다 : 즉 우리가 서투르게나마 행한 것(즉 분배)을 또다시 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그러나 우리의 입장은 이제 부주의한 분할을 교정하기 위한 마지막 조정을 하는, 어떤 어른으로부터 파이 조각을 받아 쥔 어린 아이의 그것이 아니다. 우리의 경우 중앙 central 분배, 모든 자산을 관리하는 어떤 한 사람이나 이 자산이 어떻게 분배될 것인가를 합동으로 결정하는 집단도 존재하지 않는다. 각 개인이 갖는 바는 그가 다른 사람과 교환하여 또는 선물로서 그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은 바이다. 자유 세계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물자를 손에 쥐고 있으며 새로운 소유물은 자발적 교환과 행위로부터 발생한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그러한 사회에서 배우자의 분배란 있을 수 없듯이, 우리의 경우에도 몫의 분배 행위 또는 분배란 있을 수 없다. 전체적 결과란, 관여된 서로 다른 개인들이 내릴 권리가 있는바, 그 수많은 결정들의 산물이다. ‘분배’란 어휘의 어떤 용법은, 어떤 기준에 따른 사전의 적합한 분배 행위를 함축하지 않음은 사실이다(가령, ‘확률 분배 또는 분포 probability distribution’). 그렇지만, 이 장의 제목에 구애됨이 없이 분명히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최선이겠다. 나는 해서 ‘개인의 소유물 people’s holdings’이란 어휘를 사용하겠다. 소유물에 관해서 정의의 원리란, 정의가 소유믈에 관해서 우리에게 말하는(요청하는) 바의 일부를 기술한다. 나는 우선 내가 소유물에 있어서의 정의에 관한 올바른 견해라 생각하는 바를 언명하겠고 다음 대안적 견해의 논의에 들어가겠다.”(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191~192p)



‘분배적 정의’라는 말이 중립적인 개념이 아닌 이유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분배’라는 말을 어떤 기준이나 원리(노직은 기준이나 원리를 정형적인 것으로 여기겠죠)에 따라 중앙의 분배처에서 사람들에게 가치를 나누어주는 듯한 개념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결정된 정형적인 기준이나 원리에 따른 어떤 중앙 권위체에 의한 ‘분배’는 이미 특정 가치를 반영하고 있으므로 중립적인 개념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노직의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노직이 개인의 소유물을 중립적인 개념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분배’라는 말과 달리 어떤 사전적 기준이나 중앙의 분배처를 상정하지 않으며, 각 개개인의 자유로운 교환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어떤 사전적 기준을 암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논문은 이를 좀더 쉽게 설명하고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노직은 분배적 정의라는 말이 중립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즉, 분배적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마치 자원들이 하나의 큰 사회적 그릇에 담겨진 채 어떤 중앙 기관의 정의로운 분배를 기다리며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그릇과 같은 것은 있지 아니하고, 있는 것이라곤 사람들과 자연세계 그리고 사람들의 생산물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재화의 생산과 그것들의 분배를 서로 독립된 문제들로 다룰 수 없다. 노직읜 생각은 어떤 중앙분배과정에도 의존함이 없이 경제적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분배적 정의’라는 말보다 ‘소유물에서의 정의’라는 보다 중립적인 말로써 이 논의의 이름을 붙이기를 원한다.(구영모, 「Nozick의 소유권리론에 대하여」)


만일 제가 위에서 소개한 엉터리 설명에서처럼, ‘분배적 정의’가 그것을 ‘실현해야 하므로’ 중립적인 개념이 아닌 것이라면, 노직은 위에서 ‘소유물에서의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노직의 입장에서 ‘소유물에서의 정의’까지 중립적인 개념이 아니게 됩니다. 이런 결론은 노직의 글을 완전히 오독했거나 제대로 읽지 않은 결과이지요.


수험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후의 내용인 것 같습니다. 보다 수험학적 관점에 부합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내용이 수능 생활과 윤리 시험에 아무 맥락 없이 선지로 던져질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 의문입니다.


물론 ‘중립적 개념’과 관련된 노직의 입장이 2018학년도 수능에서 제시문으로 등장하긴 했지만, 이것이 아무 맥락이 주어지지 않은 채 그냥 바로 선지로 출제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노직의 글을 읽어 보면, 중간에 노직은 “‘분배’란 어휘의 어떤 용법은 어떤 기준에 따른 사전의 적합한 분배 행위(= 정형적 분배 원리에 의한 분배)를 함축하지 않음은 사실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노직이 ‘분배적 정의’를 중립적인 개념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은 ‘분배’라는 말이 특정한 맥락의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뿐입니다. 중앙의 분배처가 사전의 분배 기준에 따라 사람들에게 물건을 나누어준다는 의미로 ‘분배’라는 말이 해석될 경우에만, 노직은 ‘분배적 정의’를 중립적인 개념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직이 언급했듯이, ‘분배’라는 말이 항상 그렇게만 해석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누가 무엇을 얼마만큼 가져야 하는가’에 관한 논의를 ‘분배적 정의’에 관한 논의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분배’라는 말을 이렇게 이해하면, 노직의 소유물에서의 정의 이론도 더 넓은 의미에서는 하나의 분배적 정의 이론이게 됩니다. 노직은 ‘누가 무엇을 얼마만큼 가져야 하는가’라는 논의에서 “누구든지 자유롭게 취득하고 자유롭게 이전받은 물건만을 소유해야 한다.”라는 답을 제시하는 것이죠.


2. ‘분배’, ‘분배적 정의’라는 말을 보다 넓게 해석한 사례는 이미 평가원 기출에서 여러번 확인되었습니다.

(1) 2022학년도 6월 모의평가 7번 문항의 노직 제시문에는 대놓고 “분배가 정의로운가는 그 분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달려 있다.”라는 표현이 나오고,

(2) 2021학년도 수능 10번 문항의 ㄴ 선지에도 “분배받는 사람의 도덕적 공과(功過)를 기준으로 삼는 분배는 정의의 원리에 어긋나는가?”가 노직이 긍정의 대답을 할 질문으로 출제되었습니다.

(3) 2021학년도 9월 모의평가 18번 문항의 노직 제시문에도 “분배적 정의의 완결된 원리는 오직 다음일 것이다. 어떤 분배가 정의로울 충분조건은 그 분배하에서 모든 사람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소유 권리를 소유함이다.”라는 표현이 등장하였습니다.

(4) 2021학년도 6월 모의평가 7번 문항 ④ 선지에는 “분배의 정당성은 분배된 결과보다는 분배의 역사적 과정에 달려 있다.”가 노직의 입장으로 출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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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세기는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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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20학년도 6월 모의평가 15번 문항 ㄱ 선지에는 “정형화된 재화 분배 원칙은 분배적 정의에 위배되는가?”가 노직이 긍정의 대답을 할 질문으로 출제되었습니다.


기출문제에서 확인된 이 모든 ‘분배적 정의’라는 용어는, 사실상 노직의 ‘소유물에서의 정의’를 뜻하고 있으며, 이는 ‘분배적 정의’라는 용어가 넓은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3. 애당초 교과서에서도 롤스와 노직, 왈처의 정의 이론을 <분배적 정의와 윤리적 쟁점들>이라는 단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2.와 3.의 증거들은 ‘분배적 정의’라는 용어가 교육과정상, 노직이 우려한 것처럼 ‘협소한’ 의미로 제한되어 사용되지 않고,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글의 초반부에 제시해 드린 OX 퀴즈의 1.은 아무런 맥락 없이 그냥 물어볼 수 있는 선지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분배적 정의’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가 확정되지 않는 한, 정오 판단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노직이 왜 개인의 소유물은 중립적인 개념인 데 반해 분배적 정의는 중립적인 개념이 아니라고 한 것인지, 그 맥락과 이유는 명확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이건 충분히 출제가 가능한 내용입니다.


전문성 있는 강의와 컨텐츠가 등급컷에 구애받지 않는 걱정 없는 만점을 만듭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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