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규칙찾기
※ 특정 프로그램이나 시험에 대한 비판이 있는데, 이는 해당 프로그램/시험을 비하할 목적이 맞음을 미리 밝힙니다.
규칙찾기 문제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문제적 남자, 멘사 시험, 아이큐 테스트 등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이는 아무 의미가 없다. 초등학생이라면 사고력 증진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마는, 고등학생이나 다 큰 성인에게는 오히려 사고를 제한할 뿐이다.
아이큐 테스트, 멘사 시험도 부질없는 일이다. 시험을 보기 전 문제집을 풀어서 점수를 크게 높일 수도 있고, 그러한 문제들이 수험자의 지적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성급한 일반화와 초등학생 수준의 제한된 사고방식으로 접근해야 풀어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답이 무한히 많으니. (멘사가 친목이나 잘난 척 외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은 멘사 회원들이나 이공계에 몸담은 사람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문제적 남자라는 프로그램에는 큰 문제가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문제도 있지만, 대부분의 문제가 오류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문제는 1 2 3 4 다음이 5라는 초등학생 수준의 성급한 일반화를 사용해야 풀 수 있고, 제작자의 의도에 반하는 풀이나 답은 그 논리성과 관계없이 단순 오답으로 처리된다. 무슨 독심술 문제도 아니고, 이런 억지 문제들을 단순히 숫자가 관여한다는 이유로 '수학 퀴즈' 등으로 포장하여 일반인들을 현혹시킨다.
가령, 아래와 같은 문제를 보자.
일단 5+3은 28이 아니므로 문제에 사용된 + 기호는 수학에서 사용하는 덧셈 기호와 같은 것이 아니다. 이를 적당한 이항 연산 *로 생각하더라도, 문제를 풀기 위한 조건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이항연산 a*b를 이변수함수 z = f(a, b)의 함숫값으로 정의하면, 저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함수 f는 무한히 많이 존재한다. 따라서 7*3은 그 어떤 복소수가 될 수 있고 그에 따른 규칙이 존재한다.
여기서 누군가는 반발할 것이다. 너무 깊게 접근하지 않았는가? 가장 간단한 규칙을 찾으라고 하면 되지 않나?
하지만 문제 그 어디에도 "간단한 규칙"을 찾으라는 말도, "간단한 규칙"의 엄밀한 정의는 서술되어 있지 않다. 즉 이는 well-defined term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자연어적 해석과 느낌에 의존할 뿐이다.
영재고 졸업생(재학생?)을 초대해서 위와 같은 "화학 문제"를 출제한 적도 있다. 미리 답을 알려줬든 안 알려줬든, 저 학생이 저 문제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어느정도 예상이 된다. "영재고 맞춤형 문제"라고 하지만 저런 유형의 문제는 영재고 입시 지필평가나 내신 시험에 전혀 출제되지 않으며 출제되면 오히려 문제 오류로 항의가 빗발칠 문제다. 영재고 재학생의 입장에서 저런 식으로 표현을 하는걸 보면 속이 메스꺼워진다..
영재고 타이틀을 이용해서 이렇게 어그로를 끌어대는데, 저런 문제는 푸는 사람이 지능이 낮은거다. 경기과고 에이스면 당연히 답이 없다고 하겠지.. 사고력 문제를 같이 풀 수 있게 공유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저렇게 억지 문제들을 들고 와서 관심을 끄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저런 프로그램이나 멘사/아이큐 테스트 때문에 일반인들이 규칙찾기 억지 문제와 수학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ZFC 공리계에서 출발해서 모든 것이 엄밀하게 증명되고 무모순인 순수 수학을 저런 넌센스 문제와 동일시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마지막 문제.
거꾸로 보면 86 - 88 89 90 91처럼 보이기 때문에 87이 답이라는건데, 이 역시 말이 안 되는 논리다. 뒤집었을 때 그렇게 되어야 하면 87을 뒤집은게 답이 아닌지? 하지만 87을 뒤집은 형태는 숫자가 아니다.
이보다 더 근본적으로 86과 88 사이에 87이 와야 하는 이유는 없다. 86.5가 와도 되고, pi + e가 와도 되며 모든 경우에 대하여 이를 만족시키는 일반항이 존재한다.
수학에서 이러한 성급한 일반화를 사용할 시 문제가 됨을 보여주는 예시는 수없이 많다. 2 cos x (sin x) / x ... (sin (2n-1)x) / (2n-1)x 를 -무한대부터 +무한대까지 적분한 이상적분의 값을 a_{n}이라 정의하면, a_{1} = a_{2} = ... = a_{56} = pi이지만 a_{57}의 값은 pi가 아니다. 문제적 남자였으면 처음 네 개만 계산해보고 항상 pi라고 결론지었겠지.
규칙찾기 문제를 초등학교에서 배우지만 그 이후로 수능까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스크린샷 출처 : 3Blue1Brown, "Researchers thought this was a bug (Borwein integrals)", 2022. 11. 05.
https://www.youtube.com/watch?v=851U557j6HE&ab_channel=3Blue1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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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개인적으로 저런 규칙찾기가 찍어서 때려맞추기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음
살짝 문과 감성 섞어보면 '세상은 불규칙하다, 나 자신을 틀에 가두려하지 마라'를 주제로 글을 써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