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TTACA
세기 말의 풍경은 여러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해보셨겠지만, 다음 세기에 만나게 될 세상에 대한 여러 추측과 상상들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제 초등학교 시절이 그랬습니다. 그땐 97년 외환위기로 그늘 진 세상이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희망과 긍지를 가지고 나아가던 시절이었고, 판문점을 지나는 기나긴 소 떼 행렬을 티브이로 바라보며 저렇게 돈 많은 할아버지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미술 시간에 툭하면 날아다니는 자동차와 어머니 대신 집안일을 하는 로봇을 그리기만 하던 철없던 그 시절에 저는 우연히도 GATTACA(1998)를 만났습니다.
한국에서는 '가타카'라는 이름으로 개봉을 했던 이 영화를 소개해준건, 다름 아닌 당시 영어를 가르쳐주시던 젊은 여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일반적인 선생님들과 다르게 수업하시는 걸로 당시 학교에서 유명했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저는 쥬라기 공원처럼 공룡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스타워즈처럼 광선검 싸움을 하는 것도 아닌, 따분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이 영화를 왜 우리에게 소개해주셨는지 도통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날 수업도 뒤로 한 채 종일 영화를 시청하게 했고, 이후 종이를 나눠주고 느낀점을 써보라고 하셨습니다. 기억이 나는 장면은 예쁘게 생긴 누나와 휠체어를 타는 잘생긴 아저씨가 우주로 가는, 나중에 다시 보니 그런 내용이 전혀 아니었지만, 내용 뿐이었는데도 말이죠.
선생님은 우리가 낸 감상문을 다 읽어보고 나서 말했습니다.
"빈센트는 왜 포기하지 않았던걸까?"
교실에는 정적이 흘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우물쭈물하고 있는 우리들을 보며 선생님은 몇 달 전 남자친구와 영화를 보고 나온 자신만의 소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적자가 되기 위해 한 없이 노력했던 스스로가 너무나도 부끄러운 새벽이었다"
이십여년이 흘렀는데도 그 말씀이 잊히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의 흘리듯 지나가는 말조차도 오랫동안 기억하고 곱씹어 보는 편이었는데, 션티는 이런 저를 두고 매번 뒤끝 있는 놈이라고 놀리지만, 그 중에서도 선생님의 말씀은 특히 또렷이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름 어른이 된다는 생각에, 그래봤자 중학생이었지만, '가타카'를 다시 봤습니다.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 내용들 투성이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유전적으로 부족한 주인공이 우주로 가고 싶어한다는 것 정도는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런 세상이 오기 전에 태어나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뭘 해보기도 전에 죽었을거야!'
받아쓰기 점수를 못 받아올 때면 어머니는 매번 다음은 잘 볼거라고 저를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저런 세상에 태어났으면 꼼짝 없이 포기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을거라는 생각에 내심 안도하면서도, 막내 삼촌이 사온 386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며 닥쳐올 미래에 대한 약간의 불안감도 느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가타카'는 그렇게 기억에서 잊혀갔습니다.
-
그러다 우연히.
정말 우연하게도, 이십여년이 지나 '가타카'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영화 리뷰를 하는 유튜브 영상이었습니다. 평소 그런 리뷰 영상들을 좋아하지 않아서 빠르게 넘기려던 차에 '가타카'라는 큰 이름이, 채널을 넘기려는 저의 손가락을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오랜 시간 보지 못했던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반가움, 온전히 정복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 여튼 그 알 수 없는 어떤 감정들이 저로 하여금 리뷰 영상을 누르게 만들었고, 10분 정도 보던 차에 어느 순간 '가타카'를 유료로 결제하여 처음부터 정주행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내가 근래에 이토록 집중하고 본 영화가 있었나'
영화를 다 보고 한 동안 정신이 멍했습니다. 뭐랄까. 그냥 알 수 없는 벅차오름이랄까. 타이탄으로 향하는 빈센트의 표정을, 소각로에서 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제롬의 은메달을 보며 그간 인지하지 못했던,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던 유년 시절의 불안감이 조금씩 지나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피 한 방울로 앞으로 발생하게 될 모든 가능성을 예측하며 인간의 삶을 규정하려는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미래가 현실로 다가와줘서 너무나 다행이라고. 스스로 돌아갈 힘을 남기지 않고 헤엄치겠다 결심할 용기가 있었기에 겁쟁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었던 빈센트가, 아니 스스로가 대견스럽다고. 그리고 한없이 외롭다고 생각했던 내 주변에 나를 묵묵히 도와주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끝내 깨달을 수 있었다고.
-
우주선을 보기 위해서는 '가타카'의 청소부가 되는 길 뿐이라는 부모님의 말을 들었을 때, 빈센트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노력'이 아니라 '믿음'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믿음이 결국 그 자신으로 하여금 편견의 장벽을 넘어선 것이 아닌, 온몸으로 뚫고 지나가게 만들었던 것이죠.
이제 개강입니다.
새로운 세계에서의 삶은 또 어떨까 궁금합니다.
많은 생각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일단 걸어가보시죠.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
남들의 시선만으로 규정된 세상이 아닌
내 마음 속에 '믿음'이라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서.
누군가 과정은 필요없고 어차피 결과 뿐이라고 짖어대도
저는 멀리서 누구보다 그 과정의 온전함을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혹시 알겠어요.
빈센트처럼 진짜 해내게 될지도.
자 이제, 떠날 시간이 왔네요.
영화의 마지막 대사로 갈음합니다.
"우주선 놓치겠어, 빈센트"
0 XDK (+2,210)
-
1,050
-
500
-
500
-
100
-
50
-
10
-
에 시간이 지날수록 깊게 공감하게 되는듯
-
지금 진학사 2
나만 그래프 안뜸?
-
6시에 성적표 올려야지
-
후기좀..
-
성대 LC 4
성대 LC가 정확히 뭔가요? 그리고 저는 성대 의대 합격했는데 의대는 다른 계열이랑...
-
마지막에 다군 질러보자는 컨설턴트님 말 안듣고 씹안정 쓴건 좀 후회되는데 가나군...
-
진학사 0
터졋네 하 와이라노
-
지리도 킬러문제는 신유형으로 응용돼서 나오나요? 그리고 암기량은 지구과학보다는...
-
걍 내가봐도 어디 빵구날지 보이던데
-
진짜 본사 내가 터뜨려준다
-
터지면...난모르겠다~ 그렇다고 전년도 펑크난 과를 쓸 수는 없잖아~
-
그것이 인간이다.
-
스나하기에 좋지 않겠져… 5명뽑음
-
기초생활수급자나 한부모 중에 뭐가 더 유리한거 없이 걍 똑같은건가???
-
2026학년도 수능을 위한 여정을 시작하는 존경하는 수험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밝게...
-
서버 오ㅔ 이라냐
-
이거왜이럼 0
고속 연초에 1칸이면 안쓰는게 정배긴 하죠?ㅠ
-
2과목 신청했는데 결제문자가 1과목만왔는데 그냥 기다리면 나머지 1과목도 문자가 오는건가요?
-
아 민트 이쁘고 좋았는데
-
편입 vs 반수 1
올해 외대 갈것 같은데 미련남아서… 반수하게 되면 부모님 지원X, 무휴학 인데 다들...
-
지금 경쟁률? 0
높고 낮고 딱히 의미 없나요? 지금 높은데 오히려 접수 끝나고 보니 생각보다 안...
-
카카오택시에 1만8천원잡히길래 지나가는 택시 아무거나 탔더니 1만5천원나옴 ㅋㅋㅋ
-
더프때나 6,9모는 항상 1,2진동이었는데 수능때 낮3이 떠서 재수할때 사탐할지 고민이네요
-
상향 질렀습니다 제발 제발 나 다 중에 하나만 붙게해주세요 진짜
-
한장만쓰기 6
-
ㅈㄱㄴ
-
진학사 터졌네 0
정신차려제발
-
우리집에서 인서울 대학 대부분다 한시간 반 이상이라 9
성대 수원에서 서울까지 한시간정도는 할만한거같은디? 흐음...
-
대석열, "계엄 이전으로 회복돼 탄핵 심판 필요 없다“ 3
역시 우파의 대표 논리왕 대석열 나도 은행에서 100억 훔치다 걸리면 다시 돌려놓고...
-
⭐️2025 시대인재 브릿지 7,8,10,11 >각 3000원 ⭐️2025 시대인재...
-
낙지 쫄튀도 엄청 많은 것 같은게...
-
ㅈㄴ 시간낭비같애서… 개념은 도사인데… 그래도 걍 들어야하나 배기범 필수본 듣는중
-
ㅈㄱㄴ
-
취업시에는 어디가 더 낫나요......
-
자지푸딩 안파니 5
ㅜㅜ
-
경쟁률 뭐임.. 표본 25명인데 40명 지원 이 15명 뭘까요?
-
생1 기파급이 0
개념 돌리고 처음하는 책으로 괜찮을까요?
-
약대 가고 싶은데 스나해야 해서 동덕여대라도 써볼까..생각이 드네요 ㅋㅋ..ㅠ
-
직접 공부해보고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만든 시간표 입니다. 기출에 나와있는 단어와...
-
레어를사왔어요 3
앗싸
-
반박환영
-
이런말이 왜생겼다고 생각하시나요???
-
낙지 터짐? 3
나만 안되나
-
성대 자과캠에서 서울 왔다갔다하기 편하나요?? 서울에 자주 있고 싶은데, 자과캠에서...
-
표본분석하는데 0칸~1칸애들 도대체 왜 쓰는거임 ㅋㅋㅋ뭐 n수 각오하고 쓰는것같은데...
-
정시 155 0
컨설팅 받고 일단 넣긴 하는데 이거 맞냐
-
지금 급하게 표본 보는데
-
접수끝 1
휴우우우우우 이제 입시 잊고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