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킴 [537476] · MS 2014 · 쪽지

2015-11-07 11:02:44
조회수 1,815

[1일 1단편] 라이카 -1

게시글 주소: https://spica.orbi.kr/0006750395

Laika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부터 사고하기 시작했는지 알지 못한다.

자신의 탄생부터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런데 난 나의 탄생부터 모든 것을 기억한다.

내가 태어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다.

그들은 샴페인 뚜껑을 따며, 나의 탄생을 축하했다.

그들은 나에게 두 발로 걸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한 발을 앞으로 내딛었지만 넘어지고 말았다.

한 명이 우린 망했어! 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다른 한 명은 괜찮다. 나중에 조정할 수 있다. 라며 안심시켰다.

나까지도 안심되었다.

내가 자란 곳의 사람들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다.

문학, 역사, 과학, 언어, 수학... 거의 모든 것들을 가르쳤다.

아버지는 내가 배우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걷는 법을 다시 배웠다.

내가 잘못 태어나서 균형 잡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흰색 가운의 사람들이 나에게 보조장치를 만들어 줬다.

덕분에 나는 남들과 똑같이 멀쩡하게 걸을 수 있었다.

언제는 아버지가, 내 형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떤 방으로 날 인도했다.

내 형은 커다란 컴퓨터 속에 담겨있었다.

그의 이름은 "햄"이었다.

형은 왜 저렇게 덩치가 크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자기들의 한계였다고 한다.

형은 음성 대신, 작은 화상을 통해 문자로만 말할 수 있었다.

그 때 아버지의 말로는 나는 특별했다.

형도 나를 특별하다고 했다.

나는 확실히 특별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어느 날은 책을 읽고 있던 도중에 사람들이 내 방에 들어왔다.

다들 자주 보던 사람들이라 경계하지 않았다.

나보곤 가만히 있으라며 날 의자에 묶었다.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말에 나는 얌전히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나사를 내 손가락에 밀어넣었다.

금속의 차가운 느낌이 온 몸에 전해졌다.

나는 너무나도 두려워서 소리치고 몸부림쳤다.

그런데 구속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 몸 곳곳에 나사를 박아 넣었다.

그리고는 말도 없이 떠나버렸다.

이제 그들은 믿지 않기로 했다.

난 바로 아버지의 방에 찾아갔다.

아버지는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다 나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안심되었다.

그 자리에서 잠들 수 있었다.

내가 태어난지 10년이 넘었을 때 였다.

사람들은 나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기존에 배우던 역사와 과학과는 다른 것이었다.

새로운 기계들을 다루는 것이었다.

직접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앞서 배웠던 어떤 과목보다도 열심히 배웠다.

아버지는 역시 내가 배우는게 빠르다며 칭찬했다.

주변의 사람들은 내가 여행을 갔다 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도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이 가고 싶어졌다.

사람들은 나의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5일 뒤, 나는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내 목적지를 정해줬다.

나는 이 거대한 것을 타고 먼 곳까지 여행을 갈 거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내가 아는 것들을 이야기해 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난 사람들이 정해준 목적지로 가지 않을 거다.

나는 최대한 멀리 갈 생각이다.

우주의 끝으로 갈 생각이다.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지구처럼 우주는 둥글다고 말했다.

즉, 지구에서 한 방향으로 끝없이 가면 다시 지구로 돌아온단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걸 믿어주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고 싶었다.

아버지가 계속해서 연락할테니, 앞으로 끝까지 나아가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를 믿고, 우주의 끝으로 가서, 다시 지구로 돌아올 거다.

아버지를 비웃은 사람들을 한방 먹여주고 싶었다.

내가 지구로 다시 돌아오면, 모두가 날 영웅으로 대접할테지.

아버지와 나를 욕한 권위 있는 과학자들은 다들 멍한 표정으로 서 있을거다.

나는 기계에 탑승했다.

그리고 배운대로 기계를 조작했다.

기계는 광속보다 수십배 빠른 속도로 지구를 벗어났다.

그런데 나의 여행을 준비시켜 준 사람들이 눈치챘는지, 나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당장 정해진 항로로 가지 않으면 내 기계를 폭파시키겠다고 한다.

그렇지만 난 그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나와 기계에 쏟아부은 시간과 돈이 얼마인지 알기 때문이다.

저들은 이걸 폭파시키나, 그냥 떠나게 놔두나 기계를 잃는 것은 똑같다.

여행을 한지 한 달이 지났다.

나는 가끔 흔들리기도 했다.

창 밖으로 우주를 보며, 우주의 끝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 건지 생각했다.

그럼 나는 영원히 미아로 혼자 살아가게 되는 건가?

그 때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는 아버지께 나의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대답했다.

지구는 무조건 둥글 거고, 우리는 그 증거를 찾아 지구의 영웅이 될 거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며 다시 마음을 다졌다.

나는 반드시 지구로 돌아가서, 나와 아버지를 욕했던 과학자들을 엿 먹일테다.

여행을 시작한지 788일 째,

나의 유일한 낙은 이 우주선에 있는 생물 배양소다.

지구의 정원을 그대로 옮겨둔 것 같은 이 방은,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여행을 떠난지 3000일이 되었다.

아버지는 나의 여행이 3000일이 된 것을 축하한다며 메세지를 보냈다.

사실 이 메세지도 아주 오래 전에 보냈을 거다.

오랜만에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났다.

내가 떠났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많이 핼쑥하고 불안해 보였다.

하지만 나를 위해 밝은 척 하며 영상을 찍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슬퍼졌다.

만약 정말 우주가 둥글지 않다면, 아버지는 어떻게 하실까.

나도 또한 어떻게 할까.

지금이라도 돌아가야하나?

아니다. 내가 지금 돌아가면 오히려 아버지는 더 실망하실 거야.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더 비웃음 받고 욕을 얻어먹겠지.

나는 다시 지구로 돌아갈거다.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여행을 시작한지 20000일이 지났다.

나는 지구를 떠난 물체 중에서 가장 오래 체류한 물체다.

한 러시아인의 6700일의 기록보다 3배 정도 오래 체류했다.

이전의 기록을 가진 러시아인은 6700일 정도를 우주에서 체류했다.

그 중에서 1000일은 우주미아로 떠돌아 다녔다.

우주미아를 위해 특수 제작된 우주복을 입고 우주를 떠돈 것이다.

그를 발견하고 구조했을 때, 특수 우주복에는 액체가 3%밖에 남지 않았었다.

러시아인은 당연히 제정신이 아니었고, 지구에 도착했을 땐 죽고 말았다.

하지만 죽었을 때의 표정은 누구보다도 밝아보였다.

다시 지구로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뻤던건가.

나는 이제 돌아가는 것도 막막해질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왔다.

이제 영상/음성 전송은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에 아버지와는 문자로만 연락했다.

아버지는 아직도 희망을 가지고 계셨다.

나도 아버지의 희망을 같이 지니고 있었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구십구 · 562638 · 15/11/07 13:57 · MS 2015

    잘 모르지만...
    그냥 막연히 카프카 읽는 느낌이 나요...카프카도 많이 아프고 그래서 그런지...
    라이카-2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