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an.T(이서현) [253967] · MS 2008 · 쪽지

2019-03-21 21:57:36
조회수 9,664

[Shean.TMI] 나는 왜 대학원을 다니는가

게시글 주소: https://spica.orbi.kr/00021988254


안녕하세요 션티입니다.


최근 키쓸개 관련한 글로만 인사를 드렸는데,

사실 저는 강사/저자가 아니라 그냥 오르비 회원이기도 합니다.

그것도 눈팅으로 치면 정말 센츄 정도는 아닌가 하고,

나름대로 개인적인 얘기로 지난 수 년 간 많은 글도 썼지요.

저번 현강 때 잠깐 얘기했나, 정말 진반농반으로,

강사/저자로 돈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벌면,

동네 카페 하나 차려서 글이나 쓰고 싶다,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오늘도 생각보다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렸던, 

Week5 원고를 마무리 짓고,

논문을 읽기 전에 잠깐 짬을 내 끄적끄적글을 써봅니다.

특히 오르비에는 제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람도, 저를 공감할 수 있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소중했던 수험생활에 대해서, 그리고 대학이라는 것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으니까요.

당장 재수 끝나고, 삼수 끝나고 오르비에 라인을 물어보던 때가

지나고 나서 보니 그리 긴 과거처럼 느껴지진 않습니다.

실제로 이 곳에 저랑 나이 차가 별로 나지 않는 수험생 분들도 적지 않을 겁니다.

그만큼 저도 아직, 시나브로 멀어지고는 있지만, 강사/저자여서 제가 더 멀어보일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 수험생 때의 연장선상 나이이고, 나름의 질풍노도를 겪는 나이입니다.

슬슬 몇 년 더 지나면 정말 멀어질 것 같아, 아직 수험생활이 나에게 강력한 무엇일 때의 얘기를,

그런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절대 논문 읽기 싫어서 distracting myself하는 거 아닙니다. 진짜예요.)


대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여차저차해서 입학은 몇 년 전에 해놓고 이번이 첫 학기인데요.

관악에 있는 학교이고, $이라는 것과는 전혀 상관 없는 전공을 하고 있습니다.

경영에서도 인사조직, 인사와 조직에서도 조직(개인)행동 쪽을 공부하니까요.

거기다 하는 일은 사교육 쪽인데, 관련이 정말 1도 없는 이 전공을 저는 왜 공부할까요.

저도 저를 한 번 들여다 볼까 합니다.


아래 두 글을 읽으시면 좀 더 제 상황을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5년전 클스마스에 쓴 삼수 수기

 https://orbi.kr/0007257432

나는 대학을 삼수했고, 군대를 사수했다. 

 https://orbi.kr/0009253874



1. 그 곳의 공기를 마시고 싶다.


고3 올라가기 전 겨울이 생각납니다.

모의고사 평균 4, 5등급의 

공부를 하지 않던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은,

이대로 살다간 안 될 거 같아,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말에 평균 2등급 정도 나왔을까요.

그리고 어찌보면 해서는 안 됐을, 금기의 사랑에 빠집니다.

서울대라는 곳. 그 곳. 정확히 어떤 계기로 목표가 되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냥 계속해서 나에 대해, 목표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다보니 이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신의탑 꼭대기에 있는듯한 그 곳. 그 곳을 가고 싶다. 

열망한다. 열렬히.

직접 갔습니다. 부모님과. 그리고 캠퍼스를 돌았지요. 

광활하고 - 웅대했던. 

그 겨울날의 공기는 멋지게도 차가웠습니다. 

이 찬바람은 계속 맞고 싶다.

그리고 사랑의 크기만큼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열렬히 살았어요.

체육교육과를 목표로 보낸 고3, 

그리고 일반 문과를 목표로 보낸 재수,

그리고 삼수...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 '지적인 재능'은 그 사랑을 이룰만큼 크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컸다면 우선 국어(그 당시 언어)를 

참 잘하지 않았을까 하고.

그렇다고 이 한계를 극복할만큼의 노력에도 미치지 못했고요.


그 곳의 공기를 참 마시고 싶었는데. 

그 공기를 마시며 펜을 잡고 노닐면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을텐데. 마시지 못했습니다.

같은 서울 바닥의 공기였지만 조금은 먼 곳으로 대학을 갔죠.

그리고 그 공기의 느낌은 잊혀지는 듯 했습니다.


돌고 돌아 - 대학교가 아닌 대학원으로 이 곳에 다시 왔습니다.

학부 분들의 능력에 비할바가 전혀 아니지만은,

그러한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10년 전의 내가 바랐던 것,

이 곳의 공기를 마시며 거니는 것

이 곳의 공기를 마시며 공부하는 것

이것들을 10년 후의 내가 이루어주었으니까요.


내일도 그곳의 공기는

상쾌할 것 같습니다.



2. 무식하다.


나의 지적 능력, 사고 능력은 수능에서 멈추어버린 걸까 -

라는 생각을 20대를 보내고 자주 합니다.

그도 그럴듯이, 저는 학부에서 영어통번역학과를 전공했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 그것은 아시다시피 다시 '아기'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본적인 단어의 의미, 발음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 수준.. 중학교 수준.. 고등학교 수준..

대학교 수준까지 읽고, 쓰고, 말하고, 들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미 해외에서 수학하거나 외고에서 날렸던 친구들은 아기가 될 필요가 없었지만,

정말 수능영어,만 팠던 저에게는, 

초등학교의 영어, 중학교의 영어, 고등학교의 영어 수준을

네 가지 영역에서 다 갖추기 위해 노력하기가 참으로,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많이 부족하고(빈말 아닙니다.), 

평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고등학교, 대학교 수준의 영어까지 끌어올렸기에,

이 대한민국 엘리트 영어 집단 중 하나인 통역장교를 했을진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그 이상,의 '지적 성장', '사고력 성장'은 하지 못한 것 같다,

는 것입니다.

아기의 기본적인 대화 수준을 사고수준으로 양적화 했을 때,

한 5 정도 될까요. 아이는 10.... 해서

중학교 40 고등학교 50 대학교 60 정도라고 하면,

영어도 60으로 만드느라 기저에 있는 사고 수준을 60 너머로 끌어 올리지 못한 것이지요.

대학교에서 다방면으로 공부하여 이를 70이나 그 이상으로 끌어올렸어야 했는데.

아직도 대부분의 영역이 

수능 수준에서 머물러 있음을 절감합니다.

오르비를 보면, 그 이상 수준의 멋진 분들이 참으로 많은데요

(창립자님부터 넘사벽..)

수학에서의 확률 통계에 대한 지식이라든지, 

(문과 대학원도, 논문은 무조건 확통입니다. 확통 열심히 하세요..)

국사도 그렇고 여러 사회 과목들에 대한 지식.

특히 경제의 경우는 삼수 때 '일부러' 

나중에 도움 되려고 했던 과목인데

지금도 경제 지식이 수능 수준에 머물러, 

아니 그마저도 까먹었음은 참 부끄럽습니다.


오르비 프로눈팅러인 저는 

1, 2년 전 오르비 댓글에서 이런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유명한(아마 ㄱㄴㄷㅅ) 학원의 좋은 대학 출신의, 10년 20년 학원계에서 일하신 선생님께서,

'내가 생각하는 수준이 수능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라고 하셨다는군요.

저도 그렇게 될 수도 있음을 직감했는지, 

이 댓글이 아직까지 기억이 납니다.


참 무식합니다.

그리고 노력을 하지 않으면, 

평생 20살 수능 수준의 사고만 하다 죽을 걸 확신합니다.

제가 집중하는 일 외에는 너무나 집중 버튼을 off해버려서,

대학 때는 영어 외에, 지금은 키쓸개와 강의 외에는 신경을 너무나 쓰지 않습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명한 시간 배분은,

대학원 수업을 준비하고 듣는 시간도 모두 키쓸개와 강의 구상, 홍보, 디테일 작업에 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돈을 더 벌 확률도 높아지겠지요.


그래도, 저도 돈 참 좋아합니다만, 

돈이 다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을 다닙니다.

다녀야만 무엇을 '공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인간이란 나약한 존재는 또 약간의 '의무' '강제'가 있어야 하기에.

그래서 지난 한 달 간 침대에서 잠을 자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고

대부분 옷장 옆에서 쪽잠을 잤지만 이런 모습도 객관화 해보면 참 멋진 열정인듯 합니다.

오르비에 있는, 그리고 사회에 있는 수많은 똑똑한 분들을 따라갈 순 없을 것 같으나,

그래도 노력해보려 합니다.



3. 나도, 배운다.


2번의 연장선상입니다.

앞으로 몇 년은 아마도, 강사라는 직업으로 살아갈 것 같습니다.

잘 된다면 일주일 내내 누군가를 가르치는, 

수업으로 살게 되겠지요.

그리고 우리나라의 특성상, 

거기다 이 점수 상승을 위한 수능이라는 특성상,

저는 거의 one-way information delivery 수업만 

하게 될 것이고요.

어떻게 보면 가르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수평적인 관계라기보다는

조금은 수직적 관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관성의 동물인 인간은 점차 이 탄성에 젖겠지요.

내가 짱이고, 나만 믿고, 내 말만 듣고 따라와.

돈이라도 많이 벌게 되면,

좋은 걸 입고 좋은 걸 먹게 되면서 더욱 더 이 탄성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려 할테고요.

(실제 제 나이 또래의 잘되는 강사 분들은 참으로 좋은 것들을 입고 신고 다니시더라고요.

저는 일례가 하나 있는데요. 작년에 지하상가에서 이쁜 빨간 모자 몇 만원에 주고 샀다가, 아는 동생이

'형 모자 좋은 거 사셨네요' 한 적이 있습니다. '응? 응 고마워.' 했는데, 그 '좋은 게' 그 '좋은 게' 아니었던 겁니다.

정말 비싼 거. 말하는 거더군요. 알고보니 모자 앞에 '발렌시아가'라고 써있는 그 브랜드가 명품인지 모르고

짭을 한 달 정도 열심히 쓰고 다녔었네요. 그렇다고 나중에 돈을 잘 버는데 굳이 좋은 것을 입지 않겠다,는 건 아닙니다.

다 자신이 버는 만큼 맞게 쓰면, 멋진 것이고 누구하나 뭐라 할 사람 없지요.)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

노력해보려 합니다.


그래서 저도 배우는 입장이, 

가르치면서도 계속 되어보려 합니다.

그래야 '겸손'이라는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수업에서 계속 교수님한테, 반 친구들에게 크리틱을 받고

또 이 논문은 왜 이렇게 어렵지, 이 통계는 어떻게 이해하는거야.

저도 성장하면서 저를 따라와주는 학생들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지.

같이 성장하는 느낌, 그 느낌을 제가 학생이면서 가르치면

더 잘 느낄 것만 같습니다.



생각나는대로 끄적여봤는데,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빨리 논문 읽고 paper 써야 하는데 ㅎㅎ.


그저, 오르비에도 분명히 많을 장수생과,

목표한 곳을 가지 못해 아쉬운 대학생 분들이

공감하고

그 감정을 몇 년 먼저 느낀 사람은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나도 그 즈음에 저럴까, 아니면 다를까.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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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정리한 글 목록인데(업데이트는.. 몰라 ㅎㅎ)
'대학, 인생, 영어' 부분을 가시면 비슷한 글이 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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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문학 - 수필] 두 남자의 손(20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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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커밍이 맺어준 너무나 소중한 인연.(20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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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를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다ㅎㅎ.txt(20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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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고 출신 친구의 페북을 보며.(2016.07, 조회수 1만 6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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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인데 암거나 질문받음+간략한 내 인생(2016.7, 조회수 5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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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람은, 계속 전다. 수능도. (feat. Show Me the Money 5)(2016.6, 조회수 3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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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글] 역시 난, 머리가 좋지 않다.(2016.6, 조회수 3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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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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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이 오를지는 딱 보면 안다. (2016.04, 조회수 4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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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선택] 영어는 기본 아닌가요? 굳이 전공을 해야 하나?(2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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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 클스마스에 쓴 삼수 수기 (스압 주의)(2015.12, 조회수 8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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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사무총장님의 발음은 좋은 건가 안 좋은 건가.(2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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