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cri [2] · MS 2002 · 쪽지

2012-06-09 10:43:05
조회수 13,083

수능 난이도 높았던 시절 시험장 풍경에 관한 넋두리

게시글 주소: https://spica.orbi.kr/0002920804

아래에 언어 난이도 관해서 어떤 학생이 묻는 글 보니 옛 생각이 나서요.

요즘에는 영역별 만점자 1% 정책으로 수능이 쉽게 나오는 편이지만,
제가 시험을 보던 수능 초창기만 해도 매년 시험 난이도가 정말 심하게 들쑥날쑥이었어요. 
쉬울 때는 지금 수능 보다 훨씬 쉬웠고, 어려울 때는 정말 인정사정 없었죠.

한창 언어 어려웠던 02~03 때 1등급 컷이 120점 만점에 100점 근처였으니까,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83점 정도였던 건데요,
이때는 시험장에서 애들이 1교시 끝나고 투신자살하고 그랬어요. (언어 1컷 80점대라는 것의 압박감은 이정도..)
02때는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었을 거에요. 
그 무렵에는 수능 시험날 저녁 뉴스는 자살한 학생 기사 보는 게 일이었죠..

1교시 끝나고 시험 포기하고 그냥 집에 온 애들도 수백~수천 명이었고요. 그때는 지금처럼 언수외탐 과목 선택해서 보는 거 없고, 그냥 응시하면 전과목 다 보는 거였는데, 언어랑 수리랑 응시자 수가 수천 명 차이 났죠. 

시간 내에 시험 문제 다 푸는 사람도 별로 없었어요. 언어랑 수리 영역 마킹 끝내고 옆자리 쳐다보았을 때 시험지 오른쪽이 두 장 씩 남아있고 손이랑 다리 덜덜덜 떨면서 문제 풀던 학생도 생각나네요..

또 01 언어는 역대 수능 중 거의 제일 쉬운 언어 시험이어서, 학생들이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02 때에는 거의 제일 어려운 시험이어서 완전히 멘붕이었죠. 

00은 언어만 빼면 최상위권에서는 거의 전과목 만점 받을 정도로 수능이 쉬웠고, 01은 언어마저도 쉬웠어서, 수능 점수 인플레가 무지 심했었는데요, 모의고사 치르면 400점 만점에 390점대 받는 게 너무 당연했고, 막판에는 400점 만점도 공부 잘 하는 애들은 종종 받고 그랬어서, 그런 점수에 익숙해져 있다가, 

제가 02 시험 치르고 나서 가채점 하니 380점도 못 넘어서, 어머니한테 점수를 말씀 드렸더니, 한참 동안 움직이지도 못하셨던 게 기억이 나네요.. ㅎㅎ 결국 원서 넣을 때에는 그 점수로 서울대 의대를 넣나, 치대를 넣나 고민했었지만 ...

맨날 수능 시험 날이면 몸이 많이 아파서, 컨디션 좋은 상태에서 마음 편하게 수능을 치러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03때 서울대 일단 붙고,

04때 수능 시험을 보러 가서 그 한을 풀었죠.

지금 난만한이 시험장에서 6평 치듯 04수능을 서울대 학생증을 신분증으로 들고 가서 치렀었는데, 
그때는 마음의 여유가 있으니까 문제 싹 풀어놓고, 문제 별로 난이도 분석도 하고, 주변 풍경도 지켜보고 하면서 시험을 봤죠.

(그 유명한 노란머리의 언어와 과학탐구가 고득점 관건 짤방도 그 해 작품 ㅎㅎ)

역시나 매 시간 시험 종 치기 직전에 손 덜덜 떨면서 못 푼 문제 풀던 학생들,
마킹 시작 못했는데 종 쳐서 울고불고 감독관에게 매달리던 학생,
쉬는 시간에 그냥 엎드려서 흐느끼던 학생,

지금은 거의 서른이 되어서 어딘가에서 애 낳고 잘 살고 있겠죠..


그 후로 05, 06 수능까지 봤는데.. 05 때는 감독관 선생님이 알아봐서 인사도 하고 그랬었답니다..


암튼 날씨도 더워지고, 지금이 학교 안 다니는 독학생들이 제일 슬럼프 빠지기 쉽고, 재수학원 다니는 재수생들은 자만하기 쉬울 때인데, 
다시 한 번 작년 수능 시험 채점 직후의 씁쓸했던 기분을 상기하며, 남은 152일 전력 질주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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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미나스 · 293682 · 12/06/09 11:02

    재종반 학생들은 뭐 때문에 자만하게 되는 건가요?

  • 하앎... · 347755 · 12/06/09 11:20 · MS 2010

    점수가 잘나오는 재수생을 말하신게 아닐까요

  • lacri · 2 · 12/06/09 11:58 · MS 2002

    아무래도 고3 학생들은 아직 충분히 공부가 되어 있지 않고, 반수생들은 아직 전장에 나오지 않았다보니, 6월 모의 수능에서는 학원 다니는 재수생이 제일 유리한 상태에서 시험을 치르게 되죠.. 그래서 결과를 받고 나서 2~5월 동안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렇게 성적이 잘 나왔구나 하고 자만해서, 여름에 태만해 지기 쉽습니다.

  • 히히헤헤 · 374458 · 12/06/09 11:37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무명소졸 · 383625 · 12/06/09 12:50 · MS 2011

    03 수능 언어 만점자가 전국에 1명이었죠...

    그래서 아례적으로 그 학생은 신문 인터뷰도 했던... ㅋ

    1개 틀린 사람도 20명밖엔가 안 되어서 그해 문과 입시는 언어에서 판가름이 났던...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관촌수필... ㅠㅠ

  • lacri · 2 · 12/06/09 13:01 · MS 2002

    그때 친구들이 분명히 지문과 문제가 한국말로 써있는데 아무 것도 모르겠다고... ㅎㅎ
    수리는 애초에 포기한 학생들도 많아서 1컷이 79 래도 어려웠다 하고 마는데,
    언어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어려웠을 때 수험생들의 당혹감이랄까.. 감정 기복이 훨씬 큰 것 같아요.

  • 레알땡보 · 27288 · 12/06/09 14:16 · MS 2003

    제가 04 때 복수정답 처리되어서 104였는데 1등급이었죠;;ㅋㅋ 언어 때 멘붕하고서 수리는 쉬웠는데 삽질하고 점심 이후 제대로 멘ㅋ붕ㅋ 삽질만 안했으면 라끄리님 후배가 되었을 것이건만ㅋㅋ

  • 해원(난만한) · 347173 · 12/06/09 17:34 · MS 2010

    ㅋㅋㅋㅋㅋ 우리누나가 03, 04 수능 쳤는데.. 비슷한 세대구나.. 언어120점 만점 ㄷㄷ

  • 물량공급 · 311238 · 12/06/09 17:53 · MS 2009

    지금 난만한이 시험장에서 6평 치듯 04수능을 서울대 학생증을 신분증으로 들고 가서 치렀었는데,

    ㅋㅋㅋㅋ지금은 쳐볼생각 없어요??

  • Sevolky · 333183 · 12/06/09 23:55 · MS 2017

    궁금해서 그런데요, 그럼 라크리님은 몇번수능봐서 서울의대? 서울치대? 들어가신건가요? 3번? 2번?

  • 승볶이친구 · 404192 · 12/06/10 00:01

    광복이형 승복이도 잘되게 응원좀..ㅋㅋㅋ

  • Larki · 60 · 12/06/10 15:49 · MS 2010

    나도 저때부터 오르비를 했던 거 같은데 아직도 하고 있네... 라끌님 한국에서 수능 제일 많이 친 사람이 되겠따 라고 하셨는데 아직도 유효하신가요 ㅋ?